
독서모임을 두 회차나 건너뛰고 이번 모임의 진행자가 되면서, 책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
요즘 나를 이루는 기분은 인생이 너무 버겁고 힘들다 인데, 많은 일정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 감정들이 소화되지 못하는 것 같아 엉엉 울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고른 책이 '밝은 밤'이다.
이 책을 읽고 울었다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왜 제목을 '밝은 밤'이라고 지었는지 알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초반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이 안되었지만, 차차 읽어나가며 왜 '밝은 밤'이라는 제목을 지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던 몇 구절을 공유하면서 후기를 이어보겠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1부 p.14>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중략)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2부, p.156>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에서 묻어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3부, p.220>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희자를 생각하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배움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것, 아무것도 꿈꿔보지 않았다는 것, 결혼으로 도피하려 했다는 것, 일이든 사람이든 무언자를 위해서 단 한 번도 노력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할머니는 그저 부끄러웠다. 할머니의 모든 선택이 그때로서는 합당하고 이치에 맞는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4부, p.256>
문득 작가가 화자를 통해의 문장들은 처음 책을 고를 때에 나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덕분에 나도 굳어버린 감정을 조금이나마 따뜻한 물에 씻어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마음을 지니는 것만큼 큰 공감은 없지 않을까. 4대 모녀는 각자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듯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마음을 공유하면서 아픔을 엮어나갔다. 아픔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면서 그 슬픔이 컴컴한 밤을 밝게 비춰주는듯 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 책에 대해 어떤 후기를 나눠야 될지 고민이 되어 한참 생각에 잠겼다. 어떤 책이라고 형용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했고, 조금 덜 무거웠다. '밝은 밤'이라는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가 어둠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삶에 어렴풋한 빛이 되어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빛은 찬란하거나 눈부시지 않아도 좋았다. 작고 희미하더라도, 이어지는 삶에 남겨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야기 속 여성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했다. 내가 살아내고 있는 오늘도 그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처럼, 나의 삶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밝은 밤’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았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서의 나를 조금은 인정할 수 있었다. 마음을 꺼내 씻어내고 다시 품에 안는 상상처럼, 이 책은 잠시 내 마음을 햇볕 아래 널어주는 경험이었다.
가연
이전 작가의 책도 그렇고 이번에도 작가가 쓰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묻어둔 감정이나 외면했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글 속에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됐다.
책을 다 읽고나니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더 와닿았다. 독서모임을 통해 읽은 다른 책들처럼 특별히 어떤 부분이 색다르거나 생각할거리를 던지는 식은 아니었지만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익숙한 것들로부터 나를 한번 더 들여다보는 독서가 되었다.
고은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정말 그러면 좋을텐데. 1부 초반에 나오는 이 글이 책을 읽은내내 생각났다. 마음이라는 것을 어루어만질 수 있다면 입은 상처를 덜어내고 숨막힘이 줄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재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감정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로 정해야한다. 억업과 냉혹함이 가득한 현실에서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다는 묘사들이 가장 안타깝고 슬펐다.
작가의 의도와 질문이 자연스레 생기던 지난 책들과 다르게 이번 책은 그저 스토리에 빠져들어 무아지경 읽게 되었다. 아마 우리보다 부모님 세대가 읽으면 더 와닿을 것 같아 추천드리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정아
어떻게 너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니? 살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결국 속으로 삼켰을 땐 한 뼘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번 책 <밝은 밤>은 나에게 이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롯이 자기 선택만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책의 인물들이 겪은 전쟁통, 경제난, 억압된 분위기,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각종 강박과 의무... 모진 환경 속에서 나는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문득문득 치미는 이 답답함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겠나. 그러기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에 많은 사람이 이 책에 공감했을 것이다.
다만 <파친코>나 <폭삭 속았수다> 같은 영상매체를 비롯해 최근 많이 보아온 서사 구성과 다소 신파적인 감정에 온전히 탑승하지는 못했다. 밝은 밤이라는 제목도 어쩐지 확 와닿지 않았다.

독서모임을 두 회차나 건너뛰고 이번 모임의 진행자가 되면서, 책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
요즘 나를 이루는 기분은 인생이 너무 버겁고 힘들다 인데, 많은 일정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 감정들이 소화되지 못하는 것 같아 엉엉 울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고른 책이 '밝은 밤'이다.
이 책을 읽고 울었다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왜 제목을 '밝은 밤'이라고 지었는지 알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초반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이 안되었지만, 차차 읽어나가며 왜 '밝은 밤'이라는 제목을 지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던 몇 구절을 공유하면서 후기를 이어보겠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1부 p.14>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중략)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2부, p.156>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에서 묻어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3부, p.220>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희자를 생각하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배움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것, 아무것도 꿈꿔보지 않았다는 것, 결혼으로 도피하려 했다는 것, 일이든 사람이든 무언자를 위해서 단 한 번도 노력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할머니는 그저 부끄러웠다. 할머니의 모든 선택이 그때로서는 합당하고 이치에 맞는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4부, p.256>
문득 작가가 화자를 통해의 문장들은 처음 책을 고를 때에 나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덕분에 나도 굳어버린 감정을 조금이나마 따뜻한 물에 씻어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마음을 지니는 것만큼 큰 공감은 없지 않을까. 4대 모녀는 각자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듯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마음을 공유하면서 아픔을 엮어나갔다. 아픔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면서 그 슬픔이 컴컴한 밤을 밝게 비춰주는듯 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 책에 대해 어떤 후기를 나눠야 될지 고민이 되어 한참 생각에 잠겼다. 어떤 책이라고 형용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했고, 조금 덜 무거웠다. '밝은 밤'이라는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고통과 상처가 어둠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삶에 어렴풋한 빛이 되어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빛은 찬란하거나 눈부시지 않아도 좋았다. 작고 희미하더라도, 이어지는 삶에 남겨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야기 속 여성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했다. 내가 살아내고 있는 오늘도 그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처럼, 나의 삶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밝은 밤’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았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서의 나를 조금은 인정할 수 있었다. 마음을 꺼내 씻어내고 다시 품에 안는 상상처럼, 이 책은 잠시 내 마음을 햇볕 아래 널어주는 경험이었다.
가연
이전 작가의 책도 그렇고 이번에도 작가가 쓰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묻어둔 감정이나 외면했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글 속에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됐다.
책을 다 읽고나니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더 와닿았다. 독서모임을 통해 읽은 다른 책들처럼 특별히 어떤 부분이 색다르거나 생각할거리를 던지는 식은 아니었지만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익숙한 것들로부터 나를 한번 더 들여다보는 독서가 되었다.
고은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정말 그러면 좋을텐데. 1부 초반에 나오는 이 글이 책을 읽은내내 생각났다. 마음이라는 것을 어루어만질 수 있다면 입은 상처를 덜어내고 숨막힘이 줄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재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감정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로 정해야한다. 억업과 냉혹함이 가득한 현실에서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다는 묘사들이 가장 안타깝고 슬펐다.
작가의 의도와 질문이 자연스레 생기던 지난 책들과 다르게 이번 책은 그저 스토리에 빠져들어 무아지경 읽게 되었다. 아마 우리보다 부모님 세대가 읽으면 더 와닿을 것 같아 추천드리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정아
어떻게 너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니? 살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결국 속으로 삼켰을 땐 한 뼘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번 책 <밝은 밤>은 나에게 이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롯이 자기 선택만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책의 인물들이 겪은 전쟁통, 경제난, 억압된 분위기,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각종 강박과 의무... 모진 환경 속에서 나는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문득문득 치미는 이 답답함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겠나. 그러기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에 많은 사람이 이 책에 공감했을 것이다.
다만 <파친코>나 <폭삭 속았수다> 같은 영상매체를 비롯해 최근 많이 보아온 서사 구성과 다소 신파적인 감정에 온전히 탑승하지는 못했다. 밝은 밤이라는 제목도 어쩐지 확 와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