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는 한 내가 처음으로 가슴에 새긴 격언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다. 꿈 많은 고등학생 시절, 세상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교과서보다 신문을 더 공들여 읽다 보니 ‘이왕 태어난 거, 나도 세상에 이름 한번 알려보자’는 포부가 어느새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동경심을 만든 건 신문에 실릴 만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기사 마지막에 바이라인으로 등장하는 기자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기사 몇 줄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듯한 이들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들처럼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었던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가도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전공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아 얼굴도 잘 모르는 진로 선생님을 찾아가 엄청난 어색함을 무릅쓰고 상담을 요청했다. 불안 가득한 눈빛으로 “글을 잘 못 쓰는데 기자가 될 수 있을까요?”라며 질문하는 나에게 진로 선생님은 “글쓰기도 결국 기술이니 배울 수 있고, 많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 거다. 네가 원하는 대로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라고 차분하게 용기를 주셨다. 선생님은 나의 조급함을 달래주셨고 자신감을 얻은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기자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하나의 인용문에서 출발한다. 저명한 독문학자 도이치는 가족과 외식을 하다가 디저트로 나온 홍차 티백에서 출처 불명의 괴테 명언을 발견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일본에서 괴테 전문가로 손꼽히는 도이치지만 그도 이제껏 본 적 없던 문장이었다. 평생 매진한 연구 분야에서 자신이 모르는 괴테의 말이 있다니... 도이치는 충격에 빠진다. 그렇게 티백의 문구가 정말 괴테가 한 말인지 출처를 찾아 나서면서 도이치의 인생이 크게 흔들린다.
명언이나 격언은 인용되는 횟수나 기간이 늘어날수록 권위가 올라간다. 복잡한 미로 같은 인생을 짧은 한 문장으로 간결하고도 꽉 차게 정리한 세련됨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품격까지 보장해준다. 같은 문장이라도 그 말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넘쳐난다는 점도 인용문의 큰 매력이다.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학자들이야말로 삶에서 인용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사람들이다. 출처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엄숙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리 검증된 권위의 말이 필수불가결하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의 출처를 찾아 헤매는 도이치의 모습에서 나는 처음에는 학자의 양심을 응원했다. 무사히 출처를 발견하고 학계의 정의롭고 굳건한 시스템이 유지되는 평온한 엔딩. 그러나 샅샅이 뒤져도 출처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고, 자신의 이론과 딱 들어맞는 문구에는 마감이 코앞인 방송용 대본에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매료되었다. 자신의 입으로 소리내 말하고 싶은 마음을 도저히 누를 수 없다. 혹시 어쩌면 진짜 아닐까. 도이치 안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간다.
진실로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 건지 아니면 속는 셈 치고 진실이라고 믿을 건지 갈등하던 도이치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출처 불분명한 명언을 괴테의 말로 인정하여 세상에 송출시키는 사고를 친다. 도이치의 탈권위적 행동, 그의 세상에서는 일탈이다. 그런데 그래서 통쾌했다. 비록 용인되지 않을지라도 가장 권위 있는 학자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정도로 한 문장에 사로잡힌 모습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도이치가 속한 학자나 내가 꿈꿨던 기자의 세계가 아니라면 보통의 세상은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p.210)이라는 말로 퉁쳐질 수 있다. 그냥 말하는 건데 어떤 말을 누가 먼저 했는지를 따지려 든다면 재미도 없고 너무 긴장돼서 아무도 입을 떼지 못할 것이다. ‘유일한’ 발언자라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정말 독일 농담인지 묻는 말에 독일에 살고 있는 도이치의 친구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이니까 바이마르 사람들의 말버릇인지도 모르지. 아니면 특정 시기의 바이마르 사람들이 그랬을 수도 있고. 여하튼 우리가 괴테니까 말이야. 바이마르 사람들은 다들 괴테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믿고 있을 정도야”(p.226) 괴테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같은 시기, 같은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어떤 명언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완독 후 처음으로는 ‘알찬 책’이라는 감상이 컸다. 모음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명언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간직하고 있다가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책 속에서 가명을 쓰는 작가의 이름 음차에 트릭을 걸어 정체를 숨기거나 그 작가가 쓴 책 내용이 주인공의 처지를 대변하는 등등 소소한 장치도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한번 다 읽었다고 바로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생각할 거리가 여러가지 있어서 '21세기 새로운 고전'이라는 홍보 문구가 괜히 붙은 게 아닌 듯하다.

+
최근 양조위의 신작 영화 <침묵의 친구 Silent Friend>를 봤다. 183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배경으로, 독일의 한 대학 캠퍼스 안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은행나무와 얽힌 세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08년 대학 최초의 여학생, 1972년 식물과 사랑을 동시에 키우는 청년, 2020년 고독한 신경과학자까지. 자연 다큐와 인물 다큐가 섞인 듯한 영화는 곱씹을수록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통해 식물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 에너지를 비로소 발견한 기분이 들었는데, 사람들도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많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는 도중 자막에 괴테라는 글자가 나왔다. 괴테! 마침 위의 책을 읽은지라 너무 반가웠다. 식물학에 새로운 분류법을 들여온 전설적인 식물학자 ‘린네’를 설명하면서 그를 존경하여 괴테가 <식물의 변형>이라는 책을 썼다는 장면이 나온다. 문학, 해부학, 지질학, 광학에 이어 식물학까지 통달하다니... 어쩌면 괴테는 정말 모든 것을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독일 관련 콘텐츠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괴테가 생각날 것이다.
***
-독서클럽 멤버 감상문-
가연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학자가 아닌 아키코와 같은 나의 입장에선 괴테가 실제로 그 말을 했는지, 그 뿌리가 어디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책 초반부를 읽어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도이치가 괴테의 문장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며 다른 이의 번역이나 논문을 뒤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누군가의 말을 단어 하나하나 곱씹으며 번역하는 그 즐거움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나를 거쳐 간 그의 말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할까? 사실 내 안으로 들어온 순간 이미 나의 것이기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도이치가 문장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던진 질문과 추측들은 결국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들이 그를 훨씬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느꼈다.
정말 괴테가 쓴 것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편지 속 문장들이 도이치에게 영향을 줬던 것처럼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된 일들조차 결국 그 문장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이 좋았다. 나에게는 누군가가 무엇을 말했는지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언가들이 결국 나를 거쳐 무엇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고은
정말 오랜만에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은 것 같다. 오해하지 않으면 하는 게 난 파우스트 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도 괴테가 작가인지는 몰랐던 사람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등장하는 괴테의 말이나 그 외 철학가들의 사상도 전혀 모른다. 웃기려고 개그를 쳤는데 어디가 웃긴 포인트인지 몰라 어물쩍 넘어가는 그런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관련 지식이 있었으면 정말 재미있었겠지만, 없어도 큰 문제 없었다.
주인공 도이치는 끝까지 괴테가 정말 이런 말을 했는가 사실관계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사실과 상관없이 스스로 답을 내리며 받아들였다. 우연히 알게 된 홍차 티백에 적힌 괴테의 말이라는 문구. 괴테가 정말 이런 말을 했을까. 현대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명언들은 정말 그 들이 말한 것인가.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들은 어쩌면 수많은 변역으로 넘어가면서 고르고 다듬어진 후에야 빛을 받은 문구일 수 있다. 물론 출처는 중요하지만 인생을 흔드는 명언을 만나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를 기억하게 됐다. 그 정도 감동받은 건 아니고 그저 이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 작품도 읽어볼 마음이 생기는 살짝 호감형 책이었다.
기억하는 한 내가 처음으로 가슴에 새긴 격언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다. 꿈 많은 고등학생 시절, 세상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교과서보다 신문을 더 공들여 읽다 보니 ‘이왕 태어난 거, 나도 세상에 이름 한번 알려보자’는 포부가 어느새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동경심을 만든 건 신문에 실릴 만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기사 마지막에 바이라인으로 등장하는 기자들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기사 몇 줄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듯한 이들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들처럼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었던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가도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전공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아 얼굴도 잘 모르는 진로 선생님을 찾아가 엄청난 어색함을 무릅쓰고 상담을 요청했다. 불안 가득한 눈빛으로 “글을 잘 못 쓰는데 기자가 될 수 있을까요?”라며 질문하는 나에게 진로 선생님은 “글쓰기도 결국 기술이니 배울 수 있고, 많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 거다. 네가 원하는 대로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라고 차분하게 용기를 주셨다. 선생님은 나의 조급함을 달래주셨고 자신감을 얻은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기자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하나의 인용문에서 출발한다. 저명한 독문학자 도이치는 가족과 외식을 하다가 디저트로 나온 홍차 티백에서 출처 불명의 괴테 명언을 발견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일본에서 괴테 전문가로 손꼽히는 도이치지만 그도 이제껏 본 적 없던 문장이었다. 평생 매진한 연구 분야에서 자신이 모르는 괴테의 말이 있다니... 도이치는 충격에 빠진다. 그렇게 티백의 문구가 정말 괴테가 한 말인지 출처를 찾아 나서면서 도이치의 인생이 크게 흔들린다.
명언이나 격언은 인용되는 횟수나 기간이 늘어날수록 권위가 올라간다. 복잡한 미로 같은 인생을 짧은 한 문장으로 간결하고도 꽉 차게 정리한 세련됨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품격까지 보장해준다. 같은 문장이라도 그 말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넘쳐난다는 점도 인용문의 큰 매력이다.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학자들이야말로 삶에서 인용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사람들이다. 출처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엄숙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리 검증된 권위의 말이 필수불가결하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의 출처를 찾아 헤매는 도이치의 모습에서 나는 처음에는 학자의 양심을 응원했다. 무사히 출처를 발견하고 학계의 정의롭고 굳건한 시스템이 유지되는 평온한 엔딩. 그러나 샅샅이 뒤져도 출처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고, 자신의 이론과 딱 들어맞는 문구에는 마감이 코앞인 방송용 대본에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매료되었다. 자신의 입으로 소리내 말하고 싶은 마음을 도저히 누를 수 없다. 혹시 어쩌면 진짜 아닐까. 도이치 안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간다.
진실로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 건지 아니면 속는 셈 치고 진실이라고 믿을 건지 갈등하던 도이치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출처 불분명한 명언을 괴테의 말로 인정하여 세상에 송출시키는 사고를 친다. 도이치의 탈권위적 행동, 그의 세상에서는 일탈이다. 그런데 그래서 통쾌했다. 비록 용인되지 않을지라도 가장 권위 있는 학자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정도로 한 문장에 사로잡힌 모습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도이치가 속한 학자나 내가 꿈꿨던 기자의 세계가 아니라면 보통의 세상은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p.210)이라는 말로 퉁쳐질 수 있다. 그냥 말하는 건데 어떤 말을 누가 먼저 했는지를 따지려 든다면 재미도 없고 너무 긴장돼서 아무도 입을 떼지 못할 것이다. ‘유일한’ 발언자라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정말 독일 농담인지 묻는 말에 독일에 살고 있는 도이치의 친구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이니까 바이마르 사람들의 말버릇인지도 모르지. 아니면 특정 시기의 바이마르 사람들이 그랬을 수도 있고. 여하튼 우리가 괴테니까 말이야. 바이마르 사람들은 다들 괴테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믿고 있을 정도야”(p.226) 괴테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같은 시기, 같은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어떤 명언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완독 후 처음으로는 ‘알찬 책’이라는 감상이 컸다. 모음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명언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간직하고 있다가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책 속에서 가명을 쓰는 작가의 이름 음차에 트릭을 걸어 정체를 숨기거나 그 작가가 쓴 책 내용이 주인공의 처지를 대변하는 등등 소소한 장치도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한번 다 읽었다고 바로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생각할 거리가 여러가지 있어서 '21세기 새로운 고전'이라는 홍보 문구가 괜히 붙은 게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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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조위의 신작 영화 <침묵의 친구 Silent Friend>를 봤다. 183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배경으로, 독일의 한 대학 캠퍼스 안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은행나무와 얽힌 세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08년 대학 최초의 여학생, 1972년 식물과 사랑을 동시에 키우는 청년, 2020년 고독한 신경과학자까지. 자연 다큐와 인물 다큐가 섞인 듯한 영화는 곱씹을수록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통해 식물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 에너지를 비로소 발견한 기분이 들었는데, 사람들도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많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는 도중 자막에 괴테라는 글자가 나왔다. 괴테! 마침 위의 책을 읽은지라 너무 반가웠다. 식물학에 새로운 분류법을 들여온 전설적인 식물학자 ‘린네’를 설명하면서 그를 존경하여 괴테가 <식물의 변형>이라는 책을 썼다는 장면이 나온다. 문학, 해부학, 지질학, 광학에 이어 식물학까지 통달하다니... 어쩌면 괴테는 정말 모든 것을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독일 관련 콘텐츠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괴테가 생각날 것이다.
***
-독서클럽 멤버 감상문-
가연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학자가 아닌 아키코와 같은 나의 입장에선 괴테가 실제로 그 말을 했는지, 그 뿌리가 어디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책 초반부를 읽어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도이치가 괴테의 문장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며 다른 이의 번역이나 논문을 뒤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누군가의 말을 단어 하나하나 곱씹으며 번역하는 그 즐거움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나를 거쳐 간 그의 말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할까? 사실 내 안으로 들어온 순간 이미 나의 것이기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도이치가 문장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던진 질문과 추측들은 결국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들이 그를 훨씬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느꼈다.
정말 괴테가 쓴 것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편지 속 문장들이 도이치에게 영향을 줬던 것처럼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된 일들조차 결국 그 문장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이 좋았다. 나에게는 누군가가 무엇을 말했는지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언가들이 결국 나를 거쳐 무엇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고은
정말 오랜만에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은 것 같다. 오해하지 않으면 하는 게 난 파우스트 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도 괴테가 작가인지는 몰랐던 사람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등장하는 괴테의 말이나 그 외 철학가들의 사상도 전혀 모른다. 웃기려고 개그를 쳤는데 어디가 웃긴 포인트인지 몰라 어물쩍 넘어가는 그런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관련 지식이 있었으면 정말 재미있었겠지만, 없어도 큰 문제 없었다.
주인공 도이치는 끝까지 괴테가 정말 이런 말을 했는가 사실관계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사실과 상관없이 스스로 답을 내리며 받아들였다. 우연히 알게 된 홍차 티백에 적힌 괴테의 말이라는 문구. 괴테가 정말 이런 말을 했을까. 현대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명언들은 정말 그 들이 말한 것인가.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들은 어쩌면 수많은 변역으로 넘어가면서 고르고 다듬어진 후에야 빛을 받은 문구일 수 있다. 물론 출처는 중요하지만 인생을 흔드는 명언을 만나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를 기억하게 됐다. 그 정도 감동받은 건 아니고 그저 이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 작품도 읽어볼 마음이 생기는 살짝 호감형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