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에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죽음의 무게를 처음으로 느꼈다. 연세와 최근 건강 상태를 고려해 나도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굉장히 편안한 얼굴로 숨을 멎었다던 할아버지는 입관실에서도 편안해 보이셨다. 입관실에서 할아버지와 마주했을 때 벅차오르는 눈물과 처음 겪은 미지의 공포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천천히 다가가 귓속에 작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할아버지를 관 안에 눕히고 화장터로 이동하고 유골함에 담겨 납골당 한 칸을 차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속은 그저 공허했다. 죽음이란, 만나지 못하는 슬픔보다도 그 사람의 빈자리를 메꿀 수 없다는 공허함이 더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까운 친족의 장례는 처음이었고, 나중에 알려줬는데 엄마도 직접 상을 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상복을 입고 머리핀을 착용한 모습을 거울로 보고 살짝 웃었다가 바로 지웠다. 웃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어두운 얼굴도 아닌 것 같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다가 살짝 입꼬리만 올렸다. 미소도 아니고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게 아주 살짝 올려서, 슬프지만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야 할 것만 같았다.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순간 들렸다. 쟨 이제 어른이 다 됐네. 태어났을 때부터 알던 아이가 상복을 입고 있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명절마다 만나는 친족 중에서 가장 막내였고 사촌과도 터울이 컸다. 성인은 되었지만 그렇게 어른 대접받은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받네 생각이 잠깐 들었다. 조문객으로 가득해진 식장을 바라보면서 결혼식은 못 가도 장례식은 가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직접 느꼈다. 내 인생에서 장례는 첫 발을 내디뎠고, 앞으로 많은 이들의 장례를 지켜보게 되겠지. 장례는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되는 일이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죽은 다음> 책은 최근 장례 업종에서 일하기 시작한 친한 언니에게 추천받았다. 화장터 취직 소식을 듣고, 한 달 후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 괜히 화장터 갔을 때 근무하는 직원들을 신경 써서 봤던 것 같다. 그 후 두 달이 지나서 만났을 때, 내가 겪은 장례 이야기를 얘기하고 언니의 근무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지도사가 정말 좋은 분이었어서 너무 감사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안 좋은 사람도 있는데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라고 안도한 반응이었다. 언니도 몇 년 전에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었다. 얘기를 나누고 같이 서점에 갔을 때 이 책을 알려줬다. 책을 읽으며 언니의 안도한 반응이 이해되었다. 정말, 정말 좋은 장례지도사분을 만났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든 게 완벽할 수 없지만, 장례만큼은 실수가 없기를 바라니까. 그래서 언니도 일은 익숙해져도 매번 긴장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몇십 년 경력을 가진 장례 노동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지금은 사라진 전통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책은 앞부분에서 장례지도사, 의전 관리사, 수의 제작사, 화장기사 등 일반 사람들이 장례하면 떠올리는 업종에 대해 설명해 준다. 장례 기본 절차도 같이 설명해 줘서 초반에는 지식을 습득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은 자택에서 보내고 싶다고들 하는데 그럴 경우 행정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광고에서 수없이 보았던 상조보험은 꼭 필요한 건지,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페이지가 절반을 넘어갔을 때부터는 장례와 애도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다. 코로나 팬더믹 당시 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을 무시하고 사람답게 보내주었다는 그들은 신변의 위험보다 신념을 우선시했다.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 p331) 죽음은 불가항력이지만,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지켜주는 건 인력(人力)으로 가능하다.
현대의 장례 방식은 기계처럼 신속하게 처리된다. 모든 일에 정해진 순서가 있고, 그 순서에 온전히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책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례는 이사가 아니기에, 삼일 안에 끝내는 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장례절차에 애도하는 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작가는 인터뷰 마지막에 꼭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본인의 장례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내가 없는, 나의 장례식의 풍경을 그려보라고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나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죽으면 더 이상 난 없는 존재인데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천국을 믿지 않는 내가 사후에 일을 신경 쓰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말하면 화장해서 납골당 말고 자연의 일부가 되게 뿌려지길 바란다. 슬퍼하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적응하길 바란다.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라 결국엔 그리 될 테니까. 그런데 한번 장례를 경험해 보니, 내가 참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결국은 이겨낼 거라는 결과만 생각하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장례는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미가 더 깊으니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인사를 나누고 자주 만나고 싶다.
***
가연
얼마 전 지인과 밥을 먹다가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입관 전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나는 많이 아프다가 죽은 사람의 마지막 얼굴도 편안할까요 라고 물어봤었다. 그리고 생각을해보니 그동안 나는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남겨진 사람에 대해서, 나의 감정과 상태들만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어떤 과정을 겪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거다. 그리고 책을 읽고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이의 모습이 평온해 보일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한 곳이 없다는 장례지도사의 말에서 그 정성스러움이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계속해서 비어가는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장례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장례를 치르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손길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장례 문화가 생겨나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미 노력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걸 책을 통해서 알게 됐다. 장례식이 단순히 사람이 죽었으니 치러야 하는 절차가 아니라 죽은 이에게 마음을 보내는 과정 중 한 방법이 된다면 우린 장례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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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
<죽은 다음>이라는 타이틀을 봤을 때 내세에 관한 이야긴가 했더니 죽은 다음에 치러지는 장례와 남겨진 주변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작가가 직접 장례 현장에 취직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썼다. 성실한 작가 덕에 읽는 현실감이 대단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미 죽고 없어졌는데 장례를 어떻게 치르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의례적 절차에 집착하는 사이, 장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존엄 의식이라는 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것을 슬퍼할 권리라는 점을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아직 어리(석)구나라는 생각에 반성도 좀 했다.
30대 싱글 여성으로서는 공영장례나 무연고 장례가 남일 같지 않음에 가장 눈길이 갔고, 관련 단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죽음이란 특히, 나의 죽음은 아직 먼 일 같고 구태여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죽음이 있기에 매 순간이 소중한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끝이 있다는, 유일무이하게 공평한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 펼쳐질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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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에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죽음의 무게를 처음으로 느꼈다. 연세와 최근 건강 상태를 고려해 나도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굉장히 편안한 얼굴로 숨을 멎었다던 할아버지는 입관실에서도 편안해 보이셨다. 입관실에서 할아버지와 마주했을 때 벅차오르는 눈물과 처음 겪은 미지의 공포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천천히 다가가 귓속에 작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할아버지를 관 안에 눕히고 화장터로 이동하고 유골함에 담겨 납골당 한 칸을 차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속은 그저 공허했다. 죽음이란, 만나지 못하는 슬픔보다도 그 사람의 빈자리를 메꿀 수 없다는 공허함이 더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까운 친족의 장례는 처음이었고, 나중에 알려줬는데 엄마도 직접 상을 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상복을 입고 머리핀을 착용한 모습을 거울로 보고 살짝 웃었다가 바로 지웠다. 웃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어두운 얼굴도 아닌 것 같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다가 살짝 입꼬리만 올렸다. 미소도 아니고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게 아주 살짝 올려서, 슬프지만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야 할 것만 같았다.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순간 들렸다. 쟨 이제 어른이 다 됐네. 태어났을 때부터 알던 아이가 상복을 입고 있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명절마다 만나는 친족 중에서 가장 막내였고 사촌과도 터울이 컸다. 성인은 되었지만 그렇게 어른 대접받은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받네 생각이 잠깐 들었다. 조문객으로 가득해진 식장을 바라보면서 결혼식은 못 가도 장례식은 가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직접 느꼈다. 내 인생에서 장례는 첫 발을 내디뎠고, 앞으로 많은 이들의 장례를 지켜보게 되겠지. 장례는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되는 일이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죽은 다음> 책은 최근 장례 업종에서 일하기 시작한 친한 언니에게 추천받았다. 화장터 취직 소식을 듣고, 한 달 후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 괜히 화장터 갔을 때 근무하는 직원들을 신경 써서 봤던 것 같다. 그 후 두 달이 지나서 만났을 때, 내가 겪은 장례 이야기를 얘기하고 언니의 근무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지도사가 정말 좋은 분이었어서 너무 감사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안 좋은 사람도 있는데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라고 안도한 반응이었다. 언니도 몇 년 전에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었다. 얘기를 나누고 같이 서점에 갔을 때 이 책을 알려줬다. 책을 읽으며 언니의 안도한 반응이 이해되었다. 정말, 정말 좋은 장례지도사분을 만났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든 게 완벽할 수 없지만, 장례만큼은 실수가 없기를 바라니까. 그래서 언니도 일은 익숙해져도 매번 긴장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몇십 년 경력을 가진 장례 노동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지금은 사라진 전통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책은 앞부분에서 장례지도사, 의전 관리사, 수의 제작사, 화장기사 등 일반 사람들이 장례하면 떠올리는 업종에 대해 설명해 준다. 장례 기본 절차도 같이 설명해 줘서 초반에는 지식을 습득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은 자택에서 보내고 싶다고들 하는데 그럴 경우 행정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광고에서 수없이 보았던 상조보험은 꼭 필요한 건지,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페이지가 절반을 넘어갔을 때부터는 장례와 애도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다. 코로나 팬더믹 당시 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을 무시하고 사람답게 보내주었다는 그들은 신변의 위험보다 신념을 우선시했다.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 p331) 죽음은 불가항력이지만,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지켜주는 건 인력(人力)으로 가능하다.
현대의 장례 방식은 기계처럼 신속하게 처리된다. 모든 일에 정해진 순서가 있고, 그 순서에 온전히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책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례는 이사가 아니기에, 삼일 안에 끝내는 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장례절차에 애도하는 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작가는 인터뷰 마지막에 꼭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본인의 장례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내가 없는, 나의 장례식의 풍경을 그려보라고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나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죽으면 더 이상 난 없는 존재인데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천국을 믿지 않는 내가 사후에 일을 신경 쓰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말하면 화장해서 납골당 말고 자연의 일부가 되게 뿌려지길 바란다. 슬퍼하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적응하길 바란다.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라 결국엔 그리 될 테니까. 그런데 한번 장례를 경험해 보니, 내가 참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결국은 이겨낼 거라는 결과만 생각하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장례는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미가 더 깊으니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인사를 나누고 자주 만나고 싶다.
***
가연
얼마 전 지인과 밥을 먹다가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입관 전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나는 많이 아프다가 죽은 사람의 마지막 얼굴도 편안할까요 라고 물어봤었다. 그리고 생각을해보니 그동안 나는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남겨진 사람에 대해서, 나의 감정과 상태들만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어떤 과정을 겪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거다. 그리고 책을 읽고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이의 모습이 평온해 보일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한 곳이 없다는 장례지도사의 말에서 그 정성스러움이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계속해서 비어가는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장례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장례를 치르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손길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장례 문화가 생겨나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미 노력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걸 책을 통해서 알게 됐다. 장례식이 단순히 사람이 죽었으니 치러야 하는 절차가 아니라 죽은 이에게 마음을 보내는 과정 중 한 방법이 된다면 우린 장례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아
<죽은 다음>이라는 타이틀을 봤을 때 내세에 관한 이야긴가 했더니 죽은 다음에 치러지는 장례와 남겨진 주변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작가가 직접 장례 현장에 취직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썼다. 성실한 작가 덕에 읽는 현실감이 대단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미 죽고 없어졌는데 장례를 어떻게 치르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의례적 절차에 집착하는 사이, 장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존엄 의식이라는 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것을 슬퍼할 권리라는 점을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아직 어리(석)구나라는 생각에 반성도 좀 했다.
30대 싱글 여성으로서는 공영장례나 무연고 장례가 남일 같지 않음에 가장 눈길이 갔고, 관련 단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죽음이란 특히, 나의 죽음은 아직 먼 일 같고 구태여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죽음이 있기에 매 순간이 소중한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끝이 있다는, 유일무이하게 공평한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 펼쳐질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