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릴 때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는 피터 팬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해리 포터였다. 요정가루를 뿌리면 하늘을 날아서 네버랜드로 떠날 수 있고, 마법 지팡이로 주문을 외우고 마법사들만 모여 공부하는 호그와트라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가보고 싶어서 부엉이가 가져오는 입학통지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그 아이들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피터팬이 되기 전 아이는 고아원에서 살았고,해리는 더즐리 가족에게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 내용들이 지금 다시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동화들은 어떨까. 이솝 우화나 그림 동화 이야기의 원작을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잔혹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발을 잘라내고, 라푼젤은 계모에게 감금을 당한 채 탑에서 살아가고, 인어공주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어린이들에게 교훈과 함께 들려주는 재밌는 이야기 속은 착하지만은 않다.
카투리안이 만들어낸 이야기들 역시 동화같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그 아이들을 위한 필로우맨이 존재한다. 그 내용은 물론 더 잔혹하고 처참하다.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들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다시 꺼내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이렇게까지 이야기 자체에 압도되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이 감정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희곡이다.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쓰인 글로 인물의 대사와 지시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초연됐는데 카투리안을 최민식 배우가 연기했다. 내가 상상하며 읽은 카투리안의 모습은 좀 더 청년의 모습이라 놀랐다. 이 이후로 극이 지속적으로 오르진 않아 아쉬운 마음이다.) 극은 카투리안이 무슨 일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눈을 가린 채로 끌려온 취조실에서 시작된다. 형사들은 그의 이야기가 실제 범죄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심하고, 취조가 이어질수록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카투리안의 ‘필로우맨’ 내용은 이렇다. 아이들에게 어느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베개로 이루어진 필로우맨이 찾아온다. 이 필로우맨은 미래에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아이들이 먼저 삶을 떠나도록 만들어 주는 인물이다. 그는 모두가 사고라고 생각하는, 사고로 위장된 아이들의 죽음 뒤에 있다. 이 필로우맨은 마이클에게도 찾아온다. 필로우맨은 어린 마이클에게 말한다. 너는 앞으로 아주 불행해질 것이고, 카투리안이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끔찍한 학대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계속 살아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마이클은 대답한다. “그럼 나는 카투리안이 만든 이야기를 못 듣게 되나?” 그리고는 그냥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마이클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질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도대체 이야기는 무엇이길래 마이클이 끔찍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카투리안은 이야기만은 남겨달라 애원하게 만드는걸까. 카투리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작품 속에는 어린 시절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점점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독자는 어떻게 이 이야기들에 공감을 하고 이해를 하는걸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형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이상한 감정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전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어떤 부분엔 이상하게 공감하게 된다. 이게 이상한 걸까. 이 이야기가 어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와 죽음, 폭력이 가득한 내용이니까? 사람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내용을 몇 백개씩이나 쓴 카투리안의 이야기는 없어져야 하는 것들인가? 불편한 이야기를 하거나 불쾌한, 사회적으로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건가? 역시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런 윤리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걸까. 사실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잘 모르겠다. 불편한 이야기와 폭력적인 이야기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 고은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도 높게 감상한 작품이다. 페이지가 후루룩 넘겨지고 한껏 스토리에 몰입되었다가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내용을 음미하는 감각이, 좋은 독서를 했구나 하며 포만감을 안겨준다. 사실 난 희곡을 안 좋아한다. 첫 희곡이 너무 재미 없었기에. 그 후 다시는 희곡을 읽지 않았다. 필로우맨도 초반 취조실 장면은 서로 진위를 알 수 없는 대화만 나와서 좀 힘들었다. 하지만 주인공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가 살인사건과 연결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장애를 가진 형 마이클이 밝힌 진실에 카투리안은 눈물을 흘리며 절망한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모방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마이클을 직접 죽이고 본인도 사형에 처한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들은 잔인하고 거의 아동학대 내용이 많지만,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주제도 있었다. 특히 '필로우맨'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었다. 끔찍한 미래만 가득한 아이들에게 필로우맨이 나타나 스스로 죽기를 권유한다. 고통스러운 미래를 없었던 일로 만들고, 행복한 시절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 읽었을 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긴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고통스러울 바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 건가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이것에 대해선 너무 어렵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들은 모두 잔인하지만 그중 특히 필로우맨 이야기는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
| 정아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고 나면 그 책의 필터가 눈에 장착된다. 일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유독 튀어 보이고 마음 쓰이는 일들이 생긴다. 요며칠 어린이 사고사건 뉴스가 그랬다. 뉴스가 된 저 아이한테도 필로우맨이 찾아갔을까? 가서 안아주었을까? 불행한 어린이를 찾아가 마지막을 제안한다는 필로우맨이 좋은 사람인지, 잔인한 사람인지, 아니 사람이 맞긴 한건지, 신은 아닌지 아직 잘 모르겠다. 좋다면 누구에게 좋은 거며 나쁘다면 누구 입장에서 나쁜 건지도. 살인범과 경찰이 팽팽한 수싸움을 벌이는 취조실의 분위기가 단번에 그려지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몰입도가 좋았다. 작가라는 살인범이 쓴 글들도 완성도가 높았으나 이런 잔혹동화밖에 쓸 수 없는 범인이 안타깝기도 하다. 실제 작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
책의 잔상이 오래 간다. 짧은 분량이지만 안속 꺼멓고 깊은 구덩이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겼다. 범인이 만들어낸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심란하고 복잡스럽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덜 불행했으면 좋겠다. |
나는 어릴 때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는 피터 팬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해리 포터였다. 요정가루를 뿌리면 하늘을 날아서 네버랜드로 떠날 수 있고, 마법 지팡이로 주문을 외우고 마법사들만 모여 공부하는 호그와트라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가보고 싶어서 부엉이가 가져오는 입학통지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그 아이들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피터팬이 되기 전 아이는 고아원에서 살았고,해리는 더즐리 가족에게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 내용들이 지금 다시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동화들은 어떨까. 이솝 우화나 그림 동화 이야기의 원작을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잔혹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발을 잘라내고, 라푼젤은 계모에게 감금을 당한 채 탑에서 살아가고, 인어공주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어린이들에게 교훈과 함께 들려주는 재밌는 이야기 속은 착하지만은 않다.
카투리안이 만들어낸 이야기들 역시 동화같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그 아이들을 위한 필로우맨이 존재한다. 그 내용은 물론 더 잔혹하고 처참하다.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들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다시 꺼내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이렇게까지 이야기 자체에 압도되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이 감정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희곡이다.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쓰인 글로 인물의 대사와 지시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초연됐는데 카투리안을 최민식 배우가 연기했다. 내가 상상하며 읽은 카투리안의 모습은 좀 더 청년의 모습이라 놀랐다. 이 이후로 극이 지속적으로 오르진 않아 아쉬운 마음이다.) 극은 카투리안이 무슨 일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눈을 가린 채로 끌려온 취조실에서 시작된다. 형사들은 그의 이야기가 실제 범죄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심하고, 취조가 이어질수록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카투리안의 ‘필로우맨’ 내용은 이렇다. 아이들에게 어느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베개로 이루어진 필로우맨이 찾아온다. 이 필로우맨은 미래에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아이들이 먼저 삶을 떠나도록 만들어 주는 인물이다. 그는 모두가 사고라고 생각하는, 사고로 위장된 아이들의 죽음 뒤에 있다. 이 필로우맨은 마이클에게도 찾아온다. 필로우맨은 어린 마이클에게 말한다. 너는 앞으로 아주 불행해질 것이고, 카투리안이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끔찍한 학대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계속 살아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마이클은 대답한다. “그럼 나는 카투리안이 만든 이야기를 못 듣게 되나?” 그리고는 그냥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마이클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질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도대체 이야기는 무엇이길래 마이클이 끔찍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카투리안은 이야기만은 남겨달라 애원하게 만드는걸까. 카투리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작품 속에는 어린 시절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점점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독자는 어떻게 이 이야기들에 공감을 하고 이해를 하는걸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형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이상한 감정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전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어떤 부분엔 이상하게 공감하게 된다. 이게 이상한 걸까. 이 이야기가 어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와 죽음, 폭력이 가득한 내용이니까? 사람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내용을 몇 백개씩이나 쓴 카투리안의 이야기는 없어져야 하는 것들인가? 불편한 이야기를 하거나 불쾌한, 사회적으로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건가? 역시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런 윤리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걸까. 사실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잘 모르겠다. 불편한 이야기와 폭력적인 이야기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도 높게 감상한 작품이다. 페이지가 후루룩 넘겨지고 한껏 스토리에 몰입되었다가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내용을 음미하는 감각이, 좋은 독서를 했구나 하며 포만감을 안겨준다. 사실 난 희곡을 안 좋아한다. 첫 희곡이 너무 재미 없었기에. 그 후 다시는 희곡을 읽지 않았다. 필로우맨도 초반 취조실 장면은 서로 진위를 알 수 없는 대화만 나와서 좀 힘들었다. 하지만 주인공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가 살인사건과 연결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장애를 가진 형 마이클이 밝힌 진실에 카투리안은 눈물을 흘리며 절망한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모방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마이클을 직접 죽이고 본인도 사형에 처한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들은 잔인하고 거의 아동학대 내용이 많지만,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주제도 있었다. 특히 '필로우맨'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었다. 끔찍한 미래만 가득한 아이들에게 필로우맨이 나타나 스스로 죽기를 권유한다. 고통스러운 미래를 없었던 일로 만들고, 행복한 시절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 읽었을 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긴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고통스러울 바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 건가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이것에 대해선 너무 어렵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들은 모두 잔인하지만 그중 특히 필로우맨 이야기는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고 나면 그 책의 필터가 눈에 장착된다. 일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유독 튀어 보이고 마음 쓰이는 일들이 생긴다. 요며칠 어린이 사고사건 뉴스가 그랬다. 뉴스가 된 저 아이한테도 필로우맨이 찾아갔을까? 가서 안아주었을까?
불행한 어린이를 찾아가 마지막을 제안한다는 필로우맨이 좋은 사람인지, 잔인한 사람인지, 아니 사람이 맞긴 한건지, 신은 아닌지 아직 잘 모르겠다. 좋다면 누구에게 좋은 거며 나쁘다면 누구 입장에서 나쁜 건지도.
살인범과 경찰이 팽팽한 수싸움을 벌이는 취조실의 분위기가 단번에 그려지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몰입도가 좋았다. 작가라는 살인범이 쓴 글들도 완성도가 높았으나 이런 잔혹동화밖에 쓸 수 없는 범인이 안타깝기도 하다. 실제 작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
책의 잔상이 오래 간다. 짧은 분량이지만 안속 꺼멓고 깊은 구덩이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겼다. 범인이 만들어낸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심란하고 복잡스럽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덜 불행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