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바깥은 여름>이다. 올해도 여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종일 창문을 열어둔 채 생활하며 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당기는 계절. 성가신 머리카락도 싹둑 잘라내 쉽게 쳐지는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싶다. 일상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자체적으로 여름방학을 만들어 훌쩍 떠날 계획도 세워본다.
휴가지에서의 여유로운 오후 시간, 쨍쨍한 햇빛 아래 시원한 그늘을 상상하며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여름이 주는 특혜인 것 같다. 올해는 <바깥은 여름>을 휴가 책으로 점 찍어 뒀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니까. 그리고 짧게 짧게 읽기에 부담이 적은 단편 모음이라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표지를 보면 짧은 머리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생동하는 계절을 만끽하기보다 오히려 안으로 틀어박힌다.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는데 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걸까.
<바깥은 여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이다. 어린 자식이 죽고(입동), 휴게소에서 주운 강아지가 사라지고(노찬성과 에반), 오랜 연인과 이별하고(건너편), 자신의 언어가 소멸하고(침묵의 미래), 교수가 될 기회를 끝내 놓치고(풍경의 쓸모), 점점 품을 떠나가는 사춘기 자녀 앞에 우왕좌왕하고(가리는 손),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남편을 그리워한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죽음, 이별, 상실, 멀어짐은 의외로 일상의 단어다. 삶에 공기처럼 표류하지만 원하지 않기에 달갑지 않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지만 예고되지 않기에 닥치면 무력해진다. 서서히 신호를 주는 계절과는 다르다.
책의 마지막 챕터, '작가의 말'에서 김애란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중략)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작가는 변화에 따라가지 않거나 혹은 따라가지 못하고 잠시 멈춰선 이들에 눈길을 준다. 행복의 이면에 반드시 존재할 아픔에 더 마음을 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가고 예쁜 옷을 입으면 이것들을 누리지 못할 이들이 걸려 맘 놓고 즐길 수 없는 부류의 사람.
그래서 김애란 작가가 사랑받는가 보다. 시선이 따뜻하다. 글을 쓰는 본인도 보통의 사람, 글에 나오는 인물들도 보통의 사람. 보편의 삶, 누구나 겪는 감정을 다룬다. 바깥의 변화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챙겨도 괜찮다, 다들 그렇다, 다독여주는 작가에게 토닥토닥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어야겠다.
<감상문>
고은
:
김애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첫 이야기부터 충격을 받았다. 목적지까지 1시간 30분 걸리는 지하철 안에서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하마터면 목적지에서 못 내릴 뻔했다. 7개의 이야기는 성별, 연령, 환경 시점이 전혀 달랐지만, 어떻게 이런 공감 가는 답답함과 공허함을 글로 잘 표현하는지 감탄스러웠다.
이야기들은 공통점으로 생명 혹은 목표를 잃은 후 상실을 겪고 있다. 상실을 겪은 뒤에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첫 이야기부터 눈물이 났던 이유는, 소중한 것을 잃은 후 다시 일어나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애달프게 느껴져서였다. 나는 아직 삶을 흔들어놓을 상실을 겪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런 상실을 겪게 된다면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이다.
가연
:
이 책이 출판된 시기쯤에 처음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거의 처음 읽다시피 했다. 아마 그때와 지금의 감상은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지금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랑 감정들, 상황들을 그때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들은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감정이랑 상황들이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처음에 배치된 단편인 '입동'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의 감정은 아무도 모른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 아내의 말에 남편은 나는 안다고 말한다.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술된 내용을 내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 때 이야기가 정말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집에서 다양한 상실과 헤어짐들이 나오는데, 지금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이야기는 '가리는 손'이었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또 어떤 단편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바깥은 여름>이다. 올해도 여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종일 창문을 열어둔 채 생활하며 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당기는 계절. 성가신 머리카락도 싹둑 잘라내 쉽게 쳐지는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싶다. 일상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자체적으로 여름방학을 만들어 훌쩍 떠날 계획도 세워본다.
휴가지에서의 여유로운 오후 시간, 쨍쨍한 햇빛 아래 시원한 그늘을 상상하며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여름이 주는 특혜인 것 같다. 올해는 <바깥은 여름>을 휴가 책으로 점 찍어 뒀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니까. 그리고 짧게 짧게 읽기에 부담이 적은 단편 모음이라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표지를 보면 짧은 머리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생동하는 계절을 만끽하기보다 오히려 안으로 틀어박힌다.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는데 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걸까.
<바깥은 여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이다. 어린 자식이 죽고(입동), 휴게소에서 주운 강아지가 사라지고(노찬성과 에반), 오랜 연인과 이별하고(건너편), 자신의 언어가 소멸하고(침묵의 미래), 교수가 될 기회를 끝내 놓치고(풍경의 쓸모), 점점 품을 떠나가는 사춘기 자녀 앞에 우왕좌왕하고(가리는 손),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남편을 그리워한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죽음, 이별, 상실, 멀어짐은 의외로 일상의 단어다. 삶에 공기처럼 표류하지만 원하지 않기에 달갑지 않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지만 예고되지 않기에 닥치면 무력해진다. 서서히 신호를 주는 계절과는 다르다.
책의 마지막 챕터, '작가의 말'에서 김애란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중략)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작가는 변화에 따라가지 않거나 혹은 따라가지 못하고 잠시 멈춰선 이들에 눈길을 준다. 행복의 이면에 반드시 존재할 아픔에 더 마음을 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가고 예쁜 옷을 입으면 이것들을 누리지 못할 이들이 걸려 맘 놓고 즐길 수 없는 부류의 사람.
그래서 김애란 작가가 사랑받는가 보다. 시선이 따뜻하다. 글을 쓰는 본인도 보통의 사람, 글에 나오는 인물들도 보통의 사람. 보편의 삶, 누구나 겪는 감정을 다룬다. 바깥의 변화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챙겨도 괜찮다, 다들 그렇다, 다독여주는 작가에게 토닥토닥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어야겠다.
<감상문>
고은
:
김애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첫 이야기부터 충격을 받았다. 목적지까지 1시간 30분 걸리는 지하철 안에서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하마터면 목적지에서 못 내릴 뻔했다. 7개의 이야기는 성별, 연령, 환경 시점이 전혀 달랐지만, 어떻게 이런 공감 가는 답답함과 공허함을 글로 잘 표현하는지 감탄스러웠다.
이야기들은 공통점으로 생명 혹은 목표를 잃은 후 상실을 겪고 있다. 상실을 겪은 뒤에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첫 이야기부터 눈물이 났던 이유는, 소중한 것을 잃은 후 다시 일어나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애달프게 느껴져서였다. 나는 아직 삶을 흔들어놓을 상실을 겪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런 상실을 겪게 된다면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이다.
가연
:
이 책이 출판된 시기쯤에 처음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거의 처음 읽다시피 했다. 아마 그때와 지금의 감상은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지금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랑 감정들, 상황들을 그때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들은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감정이랑 상황들이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처음에 배치된 단편인 '입동'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의 감정은 아무도 모른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 아내의 말에 남편은 나는 안다고 말한다.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술된 내용을 내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 때 이야기가 정말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집에서 다양한 상실과 헤어짐들이 나오는데, 지금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이야기는 '가리는 손'이었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또 어떤 단편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