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NOTE 옷장지기 생각노트


셔츠를 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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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를 다리며 


권 현 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고픈 말은 공부할 때 정장을 입는 것은 몸가짐 얘기이면서도 동시에 마음가짐 얘기라는 것이다. 왜냐면 공부는 기본적으로 노동이라서 그렇다. 공부는 정신을 고차원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지겨운 담금질이다. 수행이고, 단련이다. 공부는 애초에 생겨먹기를, 하기 싫은 게 당연하고 하기 싫은 게 실은, 그게 더 자연스러운 거다. 게다가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노무사 시험공부이고 수험이라면 더더욱.

  우리 집 옷장 사진이다. 코디까지 미리 마쳐서 저대로 입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루는 ‘내일 뭐 입지?’ 하고 2시간이나 넘게 고민하는 나를 보았다. 실컷 고민해놓고선 정작 약속 당일에는 아예 다른 옷으로 바꿔 입고 외출하는 나도 보았다. 그래서 마련한 조치이다. 뭐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없앴다. 변덕도 줄었다. 엉뚱한 데 기운 빼는 버릇을 상당 부분 고쳤다. 

  정장이 꽤 많다. 열린옷장 식으로 말하면 수트케이스 포장 바로 직전 상태로 행거에 걸어둔 셈이다. 어울리는 넥타이 또한 2,3개씩 걸어뒀다. 나는 크게 두 곳에서 정장을 차려 입는다. 열린옷장 그리고 도서관. 우선, 열린옷장에서 정장을 입고 일할 때랑 그렇지 않을 때에는 서로 많이 차이 난다. 전자의 경우, 대여자에게 말 한 마디를 건네어도 더 격식을 차려서 정돈된 언어로써 말하게 되고 핏을 설명할 땐 우스갯소리로 손쉽게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추천한 옷이 최종 대여로 직결되는 확률 역시, 정장을 입었을 때가 더 높다. 의복은 인상을, 인상은 설득력을 좌우한다. 

  도서관에서 나는 정장을 입고 공부한다. 농담 반 진담 반 나는 슬리퍼 질질 끌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공부하는 이들에 반대한다. 의자에 앉더라도 대충 앉지 않는다. 최대한 옷에 구김이 가지 않도록 신경 쓰며 허리를 곧추 세워 앉는다. 빳빳한 셔츠의 촉감과 그 텐션은 나의 자세가 나도 모르게 구부정해질 때마다 목과 어깨를 당김으로써 나에게 무언의 경고를 준다. 준엄하고 서늘하게. ‘자세 고쳐 앉아라.’ 죽비를 내려친다. 그 부름에 나는 다시 정신을 무장하고 자세를 고쳐 앉고 공부에 집중한다. 정진 또 정진하기 위하여.

  피곤하면 눕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다. 그런데 피곤하다고 눕고 졸리면 자버리고 남들 논다고 나도 놀 거 다 놀고 하면 정말이지 대책이 안 선다. 한 번 늘어지기 시작하면 두 번 세 번은 일도 아니란 걸 나는 경험으로 안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은 그 둘을 두부 자르듯 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경이로이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바른 몸가짐을 통해서 우리는 바른 마음가짐을 꾀할 수 있다. 운동 전 아르기닌을 챙겨 먹듯, 공부할 때 정장차림은 내가 옆길로 새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의 긴장과 주의를 유지시켜주는, 이른바 공부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공부 잘 되냐고 종종 물어본다. 어느 날은 혼자 진지하게 따져봤다. 답은 둘 뿐이었다. 공부를 한 날과 안 한 날. 그러니까 공부가 안 되는 날 따윈 없다. 공부는 반드시 한만큼 돌아온다. 세상에 공부만큼 정직한 게 없다. 진실 되기 어려운 세상에 어머나 ‘정직’이라니.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그래서 나는 예를 다 하고자 한다. 그래. 의식을 치르듯 옷도 신경 써서 입자. 그리고 살다보니 조금은 알겠다.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 다른 거 없다. 그게 방법이다. 매일이 전쟁이다. 눕고 싶고 자고 싶고 놀고 싶고 한없이 나태해지고 싶은 그런 나를 상대로 치고 박고 싸우는 꼴인, 매일의 전투. 다들 그렇게 산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군인은 총을 손질한다. 나는 오늘도 내일 입을 셔츠를 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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